청석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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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광주시를 공부합니다.

경안동의 유래

 

행정동이자 법정동의 하나이다.

기자조선의 마지막 왕이 남하아여 나라를 세운 회안국淮安國을 이곳 경안으로 보는 견해가 있으나 문헌상 근거가 확실하지 않다.

그전에 경안동에 회안교淮安橋라는 다리가 있었다고 한다.

원래 경안慶安이었으나 일제의 1910년대 이후 경안京安으로 바뀐 것으로 보고 있으며, 유래는 미상이다.

 

경안리 (京安里) 현 경안동

1910829일 면제(面制)를 실시할 때 경안리(慶安里)였으나,

193275일 경안면은 광주면으로 부르게 되었을 때 慶安里京安里로 개칭하게 되었다.

 

가골

조선조시대 현재의 경안리 5리 안골에 먼저 사람이 살게 되었는데

그 바깥쪽인 가장자리에 생긴 마을이라고 해서 마을이름을 '가골'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관말(官村)

일제시대에 관청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산다고 하여 이 마을을 '관마을'이라고 하였는데

요즘은 줄여서 '관말'이라고 한다.

 

파발막(把撥幕)

조선조 시대에 한양에서 여주ㆍ이천방면으로 가고, 또 지방에서 한양으로 가는 파발마들이 말을 갈아타는 파발막이 이곳에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마을이름이다.

 

경안천(京安川)


지금의 경안천은 아주 오랜 역사 속에 변함없이흐르고 있는 하천이다.

조선시대에는 경안천이 범람하기를 거의 매년 거듭하여지금의 경안동에는 거의 사람이 살지 못하였고, 제방이 축조된 1930년대 중반부터본격적인 마을이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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